칭의
칭의
정의
칭의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사랑, 진리, 자유의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선물하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건이며, 이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되는 법정적 행위이다.
개혁파 신학에서는 칭의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의 창조자, 화해자, 모든 것의 목표라는 신뢰, 확신, 확실성을 얻게 된다고 본다. 칭의는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조항(articulus stantis aut cadentis Ecclesiae)으로 불릴 만큼 기독교 신학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이다.
역사
고대 (교부 시대)
신약성서에서 "칭의론"이라는 표현은 유보적으로만 사용 가능하며, 바울은 칭의 신학을 교리가 아닌 선포(Verkündigung)로 제시했다. 고대 교부 시대에 칭의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서방 기독교의 은혜론 규범으로 정식화되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이 타락 후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상실했으며, 원죄가 아담 이래 유전된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의지의 변화를 야기하여 믿음 안에서 선행을 가능하게 하며, 세례로 시작된 과정이 참된 교회에서 그리스도인과의 연합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중세
중세 스콜라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론을 발전시켜 선행 은혜(gratia gratis data), 효과적 은혜(gratia gratum faciens), 습관적 은혜(gratia habitualis) 등의 개념을 도입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은혜 준비를 위한 인간의 능동적 협력을 명시적으로 배제했지만, 프란체스코회와 유명론(오캄, 비엘) 학파에서는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facere quod in se est)는 원칙 아래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행위가 상호 조건화된다는 입장을 제시하며 인간의 역할을 강조했다.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 강의(1515/16)와 갈라디아서 강의(1516/17)를 통해 칭의론에 대한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하나님의 의"(iustitia Dei)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의의 기준이 아니라, 히브리서 강의(1517/18)에서 "믿음이 곧 의롭다 하는 은혜"(fides iam est gratia iustificans)라고 선언하며, 믿음이 있는 곳에 의가 있고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선물로 주어진다는 개혁적 명제를 제시했다. 루터의 칭의론은 자유(인간 의지의 속박), 죄(공로로 칭의 얻으려는 시도), 믿음(오직 믿음, 인격성과 양심의 위치), 교회(전가된 의, 교회의 중재적 구원 매개 배제)의 네 가지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근대-현대
칸트 이후 슐라이어마허와 키르케고르는 개혁적 칭의론 모델을 학문적 사유 형식으로 설계했다. 20세기에는 리츨과 트뢸치가 근대 기독교 전통으로서의 신학을 제시했으며, 변증법적 신학과 불트만의 실존적 해석이 칭의론을 새롭게 조명했다. 현대에는 헬싱키 총회(1963)에서 칭의론의 내용과 용어가 현대인에게 이해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칭의 사건을 모든 소통 관계,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 그리스도론적 적용(융엘, 몰트만, 해방신학)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별 차이
가톨릭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의 칭의 교령은 루터교의 '오직 믿음'(sola fide) 교리와 대조된다. 가톨릭 전통에서 칭의는 은혜의 주입(infusion of righteousness)을 통해 신자의 내면이 실제로 의롭게 변화되는 행위이자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는 단순한 법정적 선언을 넘어선 본질적 변화를 포함하며, 선행을 통해 의로움이 증가할 수 있다고 본다. 은혜는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와 협력을 요구하며, 신자는 선행을 통해 영생을 얻을 공로를 쌓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칭의와 성화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된다.
루터교
루터교는 '오직 믿음'(sola fide) 교리를 통해 칭의를 강조하며, 이는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imputation)되는 법정적 선언으로 이해된다. 즉,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외적인 행위이며, 신자 내면의 본질적 변화(성화)와는 구분된다. 루터는 인간의 의지가 타락 후 속박되었으며(servum arbitrium), 인간이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으려는 시도 자체가 죄의 정점이라고 보았다. 칭의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수동적/외래적 의(iustitia passiva/aliena)이며, 이는 교회의 중재적 구원 매개를 배제한다.
개혁파
개혁파 신학, 특히 칼뱅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칭의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법정적 선언이자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칼뱅 신학에서는 칭의가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 cum Christo 또는 unio mystica)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칭의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주어지는 유익 중 하나로, 법정적 칭의와 내면의 변화인 성화(sanctification)는 '이중 은혜'(duplex gratia)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동시에 수여된다. 칭의는 신자를 그리스도 안으로 이끄는 법적 선물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칭의와 성화 모두의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
정교회
정교회 전통은 서방 교회의 법정적 칭의 개념과는 다른 신화(theosis, Vergöttlichung) 개념을 통해 구원을 이해한다. 1977년 러시아 정교회와 핀란드 루터교 간의 대화에서는 칭의와 신화가 유사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다. 정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점진적으로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며, 이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와 협력(synergia)이 중요하다고 본다.
논쟁점
칭의 교리는 신약성서 해석, 종교개혁 신학, 그리고 현대 에큐메니칼 대화에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 칭의의 중심성 및 성격: 종교개혁자들은 칭의를 신약 신학의 중심으로 보았으나, W. Wrede나 A. Schweitzer 같은 학자들은 바울의 칭의론을 상황적 투쟁 교리나 "부차적 분화구"로 평가했다. E. P. Sanders는 칭의의 중심적 의미를 부정하고, 법정적 범주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삶에 참여하는 '참여적 범주'가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H. Lüdemann은 이 두 범주를 "두 개의 다른 사고 영역"으로 볼 수 있지만, 실존적 실재에서는 불가분하다고 반박하며, 칭의가 법정적 사건과 다른 권능 영역으로의 이전이 결합된 것임을 강조했다.
2. 믿음과 행위의 관계: 야고보서 2:14ff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며 바울의 '오직 믿음'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야고보는 믿음을 실존적 전체 태도로 이해하지 않고 믿음과 행위의 조화를 필요로 했으며, 성령론적 차원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바울이 율법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통해 "하나님이 그리스도인 율법 위반자들 편에 서 계신다"는 다마스쿠스 사건의 깨달음을 얻고,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부터의 칭의를 선포한 것과 대조된다.
3. 루터교와 가톨릭의 칭의 이해: 트리엔트 공의회는 루터교의 '오직 믿음' 교리를 정죄하며, 칭의를 은혜의 주입을 통한 내면의 변화이자 선행을 통해 증가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반면 루터교는 칭의를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는 외적인 법정적 선언으로 보며, 성화와 명확히 구분한다. 이 논쟁은 의로움이 신자에게 '전가되는 것'(imputed)인지 아니면 '주입되는 것'(infused)인지, 그리고 인간의 자유 의지와 선행이 구원에 기여하는지 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
4. 바울에 대한 새 관점(NPP): E. P. Sanders, J. D. G. Dunn 등은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을 제시하며 제2성전기 유대교가 '행위 의'(works-righteousness)가 아닌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에 기반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은혜로 언약에 진입하고 율법 준수로 언약을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새 관점은 "율법의 행위"를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사회적/민족적 경계 표지(boundary markers)로 재해석하며, 칭의의 목적이 공로 신학에 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는 칭의를 하나님 앞에서의 법적 지위 변화를 가져오는 법정적 선언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칭의 교리에 도전하며, 칭의를 언약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지위와 연결시킨다.
1차 근거
성서 본문
바울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칭의 선포를 전개한다.
-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 구절은 칭의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 이루어짐을 명확히 한다.
- 갈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아무 육체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리라."
- 롬 8장: 하나님의 의의 권능과 죄의 권능을 대조하며,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그리스도 안에", "성령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칭의가 법정적 사건일 뿐 아니라 다른 권능 영역으로의 이전임을 시사한다.
-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바울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칭의 개념으로 대체했음을 보여주는 구절로 해석되기도 한다.
- 약 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 구절은 바울의 '오직 믿음' 교리에 대한 후기 바울 서신 및 야고보서의 상이한 이해를 보여준다.
공의회/신경
- 트리엔트 공의회 (1545-1563): 칭의에 관한 교령을 통해 루터교의 '오직 믿음' 교리를 정죄하고, 칭의를 은혜의 주입을 통한 내면의 변화이자 선행을 통해 증가하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협력, 그리고 선행을 통한 공로를 강조했다.
교부/종교개혁 문헌
- 아우구스티누스: 펠라기우스주의와의 논쟁에서 은혜의 필요성과 원죄의 교리를 정립하며 서방 기독교 칭의론의 기초를 놓았다. 인간은 타락 후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non peccare)에 있다고 보았다.
- 마르틴 루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인간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로 재해석하고,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말미암는 칭의 교리를 확립했다. 그는 믿음이 있는 곳에 의가 있고,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선물로 주어진다고 강조했다.
평가 및 현대적 의의
칭의 교리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어떤 심급 앞에서든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법정적 존재'임을 드러내며, 교회 선포의 중요한 연결점으로서 해석학적 중요성을 지닌다. 칭의 신학은 낡은 교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선포의 기회이다.
현대적 맥락에서 칭의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첫째, 칭의 사건은 모든 소통 관계에 적용될 수 있으며, 인간은 '실재에서 죄인이나 희망에서 의인'(peccator in re - iustus in spe)이라는 역설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둘째,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을 강조하는 존재론적 해석은 인간학, 사회 이론, 윤리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셋째, 그리스도론적 적용은 칭의가 인간을 비로소 인간 되게 하며(E. Jüngel), 예수의 메시아성이 다가오는 정의의 해석과 삶의 지평을 제공한다는(J. Moltmann) 해방신학 및 상황신학적 통찰로 이어진다.
칭의 교리는 현대 윤리적 담론과도 깊이 상관관계를 맺는다. '오직 믿음'은 소비주의적 사고방식을 교정하고 겸손과 윤리적 행위(사랑, 섬김)를 믿음의 열매로 육성하는 해방적 토대가 될 수 있다. 칭의는 사람들을 서로 화해시키는 수평적 차원을 가지며,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여 차별에 도전하고 평등을 지지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종적 적대감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며, 인종 화해는 복음과 칭의 메시지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칭의는 공동체의 회복(koinonia)을 의미하며, 포용(inclusion)은 신학적 개념과 연결되어 사회-윤리적 원칙으로 기능한다. 궁극적으로 칭의는 죄인의 칭의가 '책임을 질 용기'의 기초가 되며, 사회적 정의, 공동체적 포용, 그리고 교회 윤리에 대한 현대적 논의에 중요한 신학적 자원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표준 백과사전
- TRE: Bd. 28, S. 282-364 (Rechtfertigung)
- EKL: Bd. 3, S. 1455-1464
- RGG: Bd. 7, S. 50-89
연구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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