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부르심 (Berufung)

1. 개요 (Definition & Thesis)

신학적 용어로서의 부르심(Berufung, Vocatio)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관계를 맺기 위해 주도적으로 건네시는 말씀의 행위(Act of Address)를 의미한다. 이는 교의학적으로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의 첫 단계 중 하나로, 유효한 소명(Vocatio efficax)을 통해 인을 회심과 신앙으로 이끄는 사건을 지칭한다.

동시에 기독교 윤리학, 특히 종교개혁 전통에서 '부르심'은 세상 속에서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Stand)를 하나님의 섬김의 장소로 성화시키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부르심은 인간을 구원으로 초대하는 수직적 차원(Coram Deo)과, 이웃을 섬기도록 파송하는 수평적 차원(Coram Mundo)의 변증법적 긴장 속에 존재한다. 본 항목은 성서적 어원으로부터 루터의 혁명적 재해석, 그리고 현대 신학의 논의를 추적한다.

2. 성서적 기초 (Biblical Foundations)

2.1. 구약성서: 창조와 선택의 언어 (Das Alte Testament)

구약에서 부르심을 나타내는 핵심 동사는 히브리어 카라(קָרָא, qārā')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소리를 내어 부르는 것을 넘어, 대상을 지명하여 그 본질과 운명을 부여하는 창조적 행위를 내포한다.

  • 창조적 명명: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신'(창 1:5) 사건은 존재론적 규정이다.
  • 예언자적 소명: 이사야 43:1("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에서 보듯, 부르심은 이스라엘의 선택(Erwählung)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는 개인의 자질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야훼의 주권적 의지에 근거한다.

2.2. 신약성서: 종말론적 초대 (Das Neue Testament)

신약의 헬라어 칼레오(καλεῖν)와 명사형 클레시스(κλῆσις)는 칠십인역(LXX)의 qārā' 용법을 계승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를 의미한다.

  • 바울 서신: 바울에게 있어 '부르심'은 복음 선포를 통해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vocavit),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롬 8:30). 여기서 부르심은 곧 교회(Ekklesia, 부름받아 나온 무리)의 형성 원리다.
  • 고린도전서 7:20의 긴장: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이 구절은 훗날 종교개혁자들에게 사회적 신분 유지를 정당화하는 텍스트(Locus classicus)로 해석되었으나, 원뜻은 종말이 가까웠으므로 현세적 신분 변화에 집착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라는 종말론적 유보(eschatological reservation)를 뜻한다.

3. 교회사적 발전 (Historical Development)

3.1. 중세: 이중적 영성 (Mittelalter)

중세 가톨릭 신학에서 참된 '부르심(Vocatio)'은 주로 수도원적 삶(Vita contemplativa)으로의 초대를 의미했다. 복음적 권고(Consilia evangelica)를 따르는 사제와 수도자만이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로 간주되었으며, 평신도의 일상적 노동은 영적인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여겨졌다.

3.2. 종교개혁: 개념의 혁명 (Reformation)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 개념을 근본적으로 전복시켰다. 그는 수도원적 삶만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농부나 상인이나 가정주부의 일상적 노동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부르심이라고 주창했다.

  • 독일어 'Beruf'의 탄생: 루터는 성서 번역(특히 집회서 11:20)을 통해 '일/직업'을 뜻하는 단어에 종교적 '소명'의 의미를 부여하여 독일어 'Beruf'를 탄생시켰다.
  • 만인제사장직: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부름받았으며(Vocatio spiritualis),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곧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다.

3.3. 칼뱅과 청교도 (Calvin & Puritanism)

칼뱅(Jean Calvin)은 루터의 사상을 계승하되, 부르심을 예정론적 맥락에서 강화했다. 이후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신의 직업 노동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 했던 칼뱅주의의 '내세적 금욕주의(Innerweltliche Askese)'가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토대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4. 교의학적 구조 (Dogmatic Structure)

정통 개신교 신학(Orthodoxie)은 부르심을 구원의 서정 안에서 다음과 같이 세분화한다.

  1. 외적 소명 (Vocatio externa): 말씀의 선포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초대. 인간의 저항으로 거부될 수 있다.
  2. 내적 소명 (Vocatio interna): 성령의 사역을 통해 택함 받은 자의 심령에 효력을 발휘하는 소명(Vocatio efficax). 이는 중생(Regeneratio)과 회심(Conversio)을 동반한다.

현대 신학의 논의 (Karl Barth): 카를 바르트(Karl Barth)는 『교회교의학(CD)』에서 직업으로서의 'Beruf'가 세속화되어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비판했다. 그는 부르심을 "하나님의 명령(Das Gebot Gottes)"으로 재해석하며, 인간의 직업은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간순간 응답하는 동적인 순종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결론 및 참고문헌 (Conclusion & Bibliography)

부르심(Berufung)은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외부로부터(Extra nos) 도래하여 인간을 책임적 존재로 세우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이다. 현대 사회에서 직업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나 성공의 도구로 축소될 때, 신학적 '소명' 개념은 노동의 존엄성과 목적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 참고문헌 (Selected)

  1. Primary Encyclopedia:

    • Wingren, G., "Berufung I. Biblisch-theologisch",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TRE), Bd. 5, Berlin/New York: De Gruyter, 1980, 684–698.
    • Holl, K., "Die Geschichte des Wortes Beruf", in: Gesammelte Aufsätze zur Kirchengeschichte III, Tübingen, 1928.
  2. Standard Works:

    • Barth, K., Kirchliche Dogmatik, IV/3, §71 "Die Berufung".
    • Weber, M.,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4/05.
    • Luther, M., An den christlichen Adel deutscher Nation (WA 6).
  3. Critical Editions:

    •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BHS) for qārā'.
    • Novum Testamentum Graece (NA28) for klēsis.

Connected Concepts

Men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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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ygma Dictionary
v7.0 (Agentic Chain)
202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