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설
예정설 (Prädestination / Election)
1. 개요 (Definition & Thesis)
예정설(Prädestination)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인류와 역사의 종말, 특별히 개인의 구원과 유기(reprobation)를 미리 정하셨다는 기독교 교리이다. 라틴어 praedestinatio는 '미리'(prae)와 '결정하다/경계를 정하다'(destinare)의 합성어이다.
이 교리의 핵심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기계적 결정론(Determinism)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황금실(The Golden Thread)'은 구원의 확실성(Certitudo salutis)에 있다. 즉, 구원이 인간의 가변적인 행위나 의지에 달려 있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불변하는 주권적 은혜(Sola Gratia)에 근거한다는 '신앙의 확신'을 위한 교리이다. 역사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칼뱅을 거쳐 카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이 교리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신론의 정수와 연결된다.
2. 성서적 기초 (Biblical Foundations)
2.1. 구약: 공동체적 선택 (Die Erwählung des Volkes)
구약성서에서 예정 사상은 주로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의 선택으로 나타난다.
- 용어: 히브리어 '바하르'(בָּחַר, bāchar)는 하나님이 여러 민족 중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로 '선택'하셨음을 의미한다(신 7:6-7).
- 특징: 이 선택은 이스라엘의 도덕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오직 야훼의 사랑과 주권에 기인한다. 그러나 구약의 선택은 주로 '봉사를 위한 소명'의 성격이 강하며, 개인의 영원한 구원 운명보다는 역사적 사명과 언약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2.2. 신약: 구원론적 심화 (Soteriologische Vertiefung)
신약, 특히 바울 서신에서 예정은 개인의 구원과 종말론적 차원으로 심화된다.
- 용어: 헬라어 '프로오리조'(προορίζω)는 '미리 경계를 정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창세 전에 미리 아시고(proginōskō) 정하신 것을 의미한다(롬 8:29-30, 엡 1:4-5).
- 로마서 9-11장: 예정설의 Locus classicus(고전적 본문). 바울은 야곱과 에서의 예(롬 9:13)를 통해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행위와 무관함을 논증한다. 토기장이 비유(롬 9:21)는 창조주의 절대 주권을 선포한다.
3. 교의학적 발전사 (Historical Development)
3.1. 아우구스티누스 vs 펠라기우스 (Augustinus contra Pelagius)
예정설이 교리적 체계를 갖춘 것은 펠라기우스 논쟁 때이다.
- 펠라기우스: 인간의 자유의지와 공로를 강조하며, 예정은 하나님의 '예지(Foreknowledge)'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 아우구스티누스: 타락한 인류(massa damnata)는 스스로 구원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만이 구원을 가능케 하며, 이는 창세 전의 예정에 따른다. (De praedestinatione sanctorum)
3.2. 종교개혁과 이중 예정 (Gemina Praedestinatio)
- 루터: 『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에서 인간 의지의 부자유를 강조하며 예정을 옹호했으나, 사변적 추측보다 십자가 중심의 계시를 강조했다.
- 칼뱅: 『기독교 강요』(III.21)에서 이중 예정(Double Predestination)을 체계화했다. 하나님은 영원한 작정(Decretum aeternum)을 통해 일부는 영생으로, 일부는 영멸로 예정하셨다. 칼뱅에게 이 교리는 '무서운 작정'(Decretum horribile)이지만, 동시에 신자에게는 구원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최상의 위로였다.
3.3. 도르트 회의와 알미니안 논쟁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알미니우스주의(Arminianism)는 '예지 예정'(조건부 선택)을 주장했다. 이에 맞서 도르트 회의(Synod of Dort, 1618-1619)는 칼뱅주의 5대 강령(TULIP)을 확정하며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을 재확인했다.
3.4. 카를 바르트의 기독론적 혁명 (Die christologische Korrektur)
20세기 신학자 카를 바르트(K. Barth)는 『교회교의학』(KD II/2)에서 예정설을 획기적으로 재해석했다.
- 예정의 대상: 예정의 일차적 대상은 개별 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 선택과 유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한 '선택된 인간'이자, 동시에 인류의 심판을 대신 짊어진 '유기된 인간'이다.
- 보편적 희망: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유기로, 인간을 선택으로 예정하셨다. 이로써 예정설은 '어두운 운명론'에서 '은혜의 선택'이라는 복음의 핵심(Summa Evangelii)으로 전환된다.
4. 신학적 쟁점과 평가 (Theological Synthesis)
- 시간과 영원 (Time and Eternity): 예정은 시간 속의 인과율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결정된 하나님의 자유다. 이는 인간의 자유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유의 근거가 된다.
- 선교와 윤리: "어차피 정해졌다면 왜 전도하는가?"라는 비판에 대해, 개혁신학은 "선택받은 자를 부르시는 수단이 전도"라고 답한다. 예정은 나태함이 아니라 감사의 윤리를 낳는다.
- 신비의 영역: 예정설은 인간 이성으로 완전히 해명할 수 없는 신비이다. 루터가 말했듯, "숨어 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인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이 교리의 올바른 적용이다.
5. 참고 문헌 (Bibliography)
- TRE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Müller, G. et al. "Prädestination." In TRE, Bd. 27. Berlin/New York: De Gruyter, 1997.
- Augustinus: De praedestinatione sanctorum (MPL 44).
- Calvin, J.: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59), III.21-24.
- Barth, K.: Die Kirchliche Dogmatik, II/2: Die Lehre von Gott. Zürich: EVZ, 1942.
- Weber, O.: Grundlagen der Dogmatik II.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