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언약
정의
언약(히브리어: בְּרִית, berith; 헬라어: διαθήκη, diathēkē)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수여하는 구속력 있는 관계 맺음으로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로이 자신을 결박하시고 그들의 응답을 요구하시는 신학적 개념이다. 언약은 단순한 약속을 넘어 생명을 담보로 한 맹세적 성격을 지니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의 뼈대를 형성한다.
구약에서 언약은 하나님의 '자기 헌신'(Selbstverpflichtung)으로서의 은혜적 약속과 인간에 대한 '요구'(Anspruch)로서의 율법적 의무를 동시에 내포한다. 이러한 양면성으로 인해 칼 바르트는 언약을 "복음과 율법 사이의 전 영역을 채우는 개념"이라 평가했다(EKL).
역사
고대 (구약)
히브리어 berith의 어원은 '자르다'(karat)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대 근동의 조약 체결 의식에서 짐승을 쪼개어 그 사이를 지나가게 함으로써, 약속을 어길 시 이와 같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자기 저주적 맹세를 상징했다(창 15:9-18).
70인역(LXX) 번역자들은 berith를 일반적인 계약을 뜻하는 synthēkē 대신 diathēkē(유언, 처분)로 번역했다. 이는 언약이 인간과 신의 대등한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수여하는 은혜의 질서임을 신학적으로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Jackson 2013; Hahn 2005).
구속사적으로 언약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 노아 언약: 보존의 언약. 홍수 후 모든 생물과 맺은 보편적 은혜(창 9:8-17)
- 아브라함 언약: 약속의 언약. 땅, 자손, 복의 근원(창 15; 17)
- 시내산(모세) 언약: 율법의 언약. 십계명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의 언약 공식(출 19-24)
- 다윗 언약: 왕권의 언약. 영원한 왕좌의 약속(삼하 7)
- 새 언약: 예레미야의 예언. 마음판에 새겨질 율법(렘 31:31-34)
중세
중세 스콜라 신학은 언약 개념을 체계화하기보다 성례론과 교회론의 틀 안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testamentum이라는 라틴어 번역을 통해 '구약/신약'(Old/New Testament)이라는 성경 명칭이 확립되었다.
종교개혁
개혁파 전통에서 언약신학(Föderaltheologie)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츠빙글리(1484-1531)는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구약의 할례와 연결하며 언약 개념을 도입했다. 불링거(1504-1575), 올레비아누스(1536-1587), 우르시누스(1534-1583)가 이를 발전시켰다.
코케이우스(Cocceius, 1603-1669)는 『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o Dei』(1648)에서 언약신학을 체계화했다:
- 행위 언약(foedus operum): 타락 전 아담과 맺은 언약
- 은혜 언약(foedus gratiae):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언약
- 구속 언약(pactum salutis): 영원 전 성부와 성자 사이의 언약
근대-현대
칼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II/1에서 언약을 "창조의 내적 근거"(innerer Grund der Schöpfung)로, 창조를 "언약의 외적 근거"(äußerer Grund des Bundes)로 규정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 행위 언약/은혜 언약의 이원론을 극복하고 기독론적 언약 이해를 제시했다.
현대 생태신학에서는 노아 언약을 '우주적 언약'(Cosmic Covenant)으로 재해석하며, 언약의 범위를 인간을 넘어 모든 피조물로 확장하고 있다(Murray 2000; Siegwalt).
전통별 차이
가톨릭
트리엔트 공의회 전통에서 언약은 성사론과 긴밀히 연결된다.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성립되었으며, 성찬례(미사)에서 지속적으로 현재화된다. 언약은 교회를 통해 매개되며, 인간의 자유로운 협력(cooperatio)이 강조된다.
루터교
루터교는 언약신학보다 율법-복음 변증법을 중심으로 구원론을 전개한다. 언약 개념은 간접적으로 수용되며, 행위 언약의 지속적 유효성(자연법으로서)과 은혜 언약(복음으로서)의 구분이 작동한다.
개혁파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은 개혁파 신학의 핵심 구조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7장)은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을 공식 교리로 채택했다. 언약은 칭의, 성화, 성례, 교회론, 종말론을 관통하는 통합적 원리로 기능한다.
정교회
정교회는 서방 언약신학의 법적 프레임워크를 수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화(theosis)와 전례적 참여를 통한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한다. 언약은 은총의 관계적 차원으로 이해된다.
논쟁점
1. berith의 번역: diathēkē가 '언약'인지 '유언'인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된다. Kutsch는 '헌신/의무'(Verpflichtung)로 번역할 것을 제안했다.
2. 행위 언약의 성경적 근거: 창세기 2-3장에 명시적 언약 언급이 없어 '행위 언약'의 정당성이 논쟁된다(Karlberg 1980).
3. 언약과 선택(예정)의 관계: 바르트는 언약과 선택을 통합하여 기독론적 예정론을 전개했으나, 전통적 개혁파는 이를 비판한다(Wisse 2010).
4. 생태신학적 확장: 노아 언약을 인간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있다(Gnuse 2022; Chalmers 2009).
1차 근거
성서 본문
- 창 15:9-18: 아브라함 언약 의식.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더라"
- 출 24:7-8: 시내산 언약.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언약의 피라"
- 렘 31:31-34: 새 언약 예언.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 막 14:24: 최후의 만찬.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히 9:15-22: 언약과 유언의 관계. "유언은 그 유언한 자가 죽은 후에야 유효하니"
공의회/신경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의 교리적 정립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4문: 언약과 유아세례의 연결
교부/종교개혁 문헌
- 코케이우스: 『Summa Doctrinae de Foedere』(1648) - 언약신학 체계화
- 불링거: 『De Testamento seu Foedere Dei Unico et Aeterno』(1534) - 초기 언약신학
평가 및 현대적 의의
언약 개념은 다음과 같은 현대적 적실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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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윤리: 노아 언약의 "모든 육체"(창 9:10) 포괄은 생태적 책임의 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기후 위기 시대에 "방주를 다시 짓는" 교회의 사명이 여기서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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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학: 알투지우스(Althusius)의 언약 정치사상은 근대 연방주의와 민주주의의 신학적 원형이 되었다. 홉스와 루소의 세속적 사회계약론과 대조되는 대안적 정치철학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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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대화: 1999년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은 가톨릭과 루터교 간 언약 이해의 수렴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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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적 함의: 언약은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신뢰의 근거이며, 공동체적 구원 이해의 토대가 된다.
참고문헌
표준 백과사전
- TRE: Bd. 7, S. 397-410 (Kutsch)
- EKL: Bd. 1, S. 565-572 (Perlitt, Hübner, Heron)
- RGG: Bd. 1, S. 1860-1870
연구 문헌 (외국어)
- Barth, K.: Die Kirchliche Dogmatik III/1, Zürich 1945
- Cocceius, J.: 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o Dei, 1648
- Hahn, S.W.: Covenant, Oath, and the Aqedah, CBQ 67 (2005)
- Jackson, B.S.: Why the Name New Testament?, Melilah 9 (2013)
- Kraus, W./Eberhart, C.A.: Covenant-Concepts of Berit, Diatheke, and Testamentum, 2023
- Kutsch, E.: Verheißung und Gesetz, Berlin 1973
- Muller, R.A.: Covenant of Works and Stability of Divine Law, CTJ 29 (1994)
- Murray, R.: The Cosmic Covenant, The Ecologist 30 (2000)
- Perlitt, L.: Bundestheologie im AT, Neukirchen 1969
- Van Asselt, W.J.: The Federal Theology of Johannes Cocceius, Leiden 2001
- Weinfeld, M.: Art. berīt, ThWAT Bd. 1 (1973)
연구 문헌 (한국어)
- 김효남: 개혁파 언약사상과 청교도 회심준비교리, 역사신학 논총 42 (2023)
- 김길성: 행위 언약 연구: 행위 언약은 성경적인가?, 신학지남 91 (2024)
- 안상혁: 토마스 보스톤의 언약 신학, 한국개혁신학 36 (2012)
- 김대인: 사회계약론의 기원에 대한 법사학적 고찰, 법사학연구 67 (2023)
- 김은혜: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성찰, 장신논단 53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