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
유신론 (Theismus)
1. 개요 및 정의 (Begriffsbestimmung)
유신론(Theismus)은 어원적으로는 신(God)을 뜻하는 그리스어 'Theos(θεός)'에서 유래했으나, 신학사적으로는 17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특수한 철학적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신의 존재를 믿는 것(Glaube an Gott)을 넘어, 세계와 구별되면서도(초월성, Transzendenz) 세계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섭리하는(내재성, Immanenz) 인격적 신(Persönlicher Gott)에 대한 신념 체계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역사적으로 세 가지 경쟁 모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립되었다:
- 이신론(Deismus): 신이 세계를 창조했으나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는 '부재하는 시계공' 개념에 대한 반박.
- 범신론(Pantheismus): 신과 세계를 동일시하여 신의 인격성을 해체하는 것에 대한 반박.
- 무신론(Atheismus):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대한 변증.
따라서 유신론의 핵심은 '인격성(Personalität)'과 '섭리(Providentia)'의 확보에 있다.
2. 성서적 기초 (Biblische Grundlagen)
성서에는 근대적 의미의 '유신론'이라는 용어는 없으나, 유신론이 지향하는 '관계적 인격신'의 원형을 제공한다.
2.1. 구약성서: 인격적 주권자 (Der persönliche Souverän)
구약의 야훼(YHWH) 신앙은 철학적 유신론의 뿌리이지만, 헬라 철학의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 출애굽기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나님의 이름(YHWH)은 정적인 존재(Sein)가 아니라, 역사 속에 현존하며 활동하는 인격적 실재임을 드러낸다.
- 언약(Berit): 신은 초월적인 동시에 인간과 계약을 맺고 질투하며 사랑하는 '파토스(Pathos)'의 주체로 묘사된다(A. Heschel). 이는 이신론적 거리감을 거부한다.
2.2. 신약성서: 성육신과 내재성 (Inkarnation)
신약은 유신론의 난제인 '초월과 내재의 결합'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 사도행전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바울은 스토아 철학의 언어를 차용하여 범재신론적(Panentheistic)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 요한복음 1:14: 로고스(Logos)가 육신이 된 사건은, 신이 세계의 법칙(이신론)이나 세계 자체(범신론)가 아니라,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자유로운 주체임을 확증한다.
3. 개념사적 발전 (Begriffsgeschichte)
3.1. 용어의 탄생: 케임브리지 플라톤 학파
'유신론(Theism)'이라는 용어는 1678년 랄프 커드워스(Ralph Cudworth)가 그의 저서 The True Intellectual System of the Universe에서 처음 학문적으로 정립했다. 그는 당시 급부상하던 기계론적 세계관(Hobbes 등)과 무신론에 대항하여, 정신적 실재가 물질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3.2. 계몽주의와 칸트 (Kant)
임마누엘 칸트는 유신론과 이신론을 엄밀히 구분했다(Kritik der reinen Vernunft, B659).
- 이신론자(Deist): 신을 단순히 '모든 것의 원인'으로만 인정하는 자.
- 유신론자(Theist): 신을 '살아있는 존재(Lebendiges Wesen)', 즉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가진 인격으로 인정하는 자. 칸트에게 유신론은 이론 이성으로는 증명 불가능하지만, 실천 이성의 요청(Postulat)으로서 도덕적 질서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3.3. 19-20세기: 철학적 유신론의 위기
헤겔(Hegel) 이후, 신의 인격성을 인간의 투사(Feuerbach)로 보거나, 신의 절대성을 과정(Process)으로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이에 맞서 20세기 영미권의 '분석적 유신론(Analytic Theism, 예: Alvin Plantinga, Richard Swinburne)'은 논리적 정합성을 통해 고전적 유신론(Omnipotence, Omniscience, Goodness)을 방어하려 시도했다.
4. 조직신학적 구조 (Dogmatische Struktur)
유신론은 기독교 신학의 전제이지만, 기독교 신학 그 자체는 아니다. 조직신학적으로 유신론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 자존성(Aseitas): 신은 세계에 의존하지 않는다. (범신론 반대)
- 지속적 창조(Creatio Continua): 신은 창조 후 세계를 방치하지 않고 보존(Conservatio)하고 통치(Gubernatio)한다. (이신론 반대)
- 인격적 관계성: 신은 기도의 대상이 되며, 인간의 행위에 반응한다.
Adversarial Reflection (Critic's Input)
주의: 철학적 유신론은 종종 '단일 인격(Monopersonal)'을 전제하기 쉽다. 그러나 기독교적 유신론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론적(Trinitarian)이다. 철학적 유신론의 '절대자'가 고독한 군주라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관계적 공동체'로서의 유신론이다. 따라서 바르트(K. Barth)는 철학적 유신론의 신을 "죽은 우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5. 현대적 쟁점 (Aktuelle Debatten)
오늘날 유신론은 두 가지 전선에서 도전받고 있다.
- 개방적 유신론 (Open Theism): 고전적 유신론이 신의 예지(Foreknowledge)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간의 자유와 신의 반응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미래는 열려 있으며, 신도 인간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주장한다.
- 과정 신학 (Process Theology): 화이트헤드(Whitehead)의 철학을 기반으로, 신의 전능성(Omnipotence) 대신 설득적 힘을 강조하며, 신 역시 세계의 고통에 의해 변화된다고 본다. (범재신론적 경향)
6. 결론 (Synthese)
유신론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단순한 긍정이 아니다. 그것은 "신은 우리와 인격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응답이다. 현대 신학에서 유신론은 닫힌 절대성이 아니라, 고통받는 세계와 연대하는 십자가의 신학 안에서 그 의미가 재해석되고 있다.
Bibliography (Selected)
-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TRE), Bd. 33, Berlin/New York: de Gruyter, s.v. "Theismus".
- Cudworth, R., The True Intellectual System of the Universe, London, 1678.
- Swinburne, R., The Coherence of Theism, Oxford: Clarendon Press, 1977.
- Tillich, P., Biblical Religion and the Search for Ultimate Reality, Chicago, 1955.
- Pannenberg, W., Systematische Theologie I, Göttingen, 1988.